시즌 1 · 411화

일제 말 암흑기를 밝힌, 불굴의 항일투사 이관술

2021-08-15 46분

회차 줄거리

▶ 대전 골령골에서 맨 처음 처형된 이관술 6.25전쟁 발발 3일 후인 1950년 6월 28일 대전 인근의 산기슭에서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국내 최대 민간인 집단 학살지 ‘대전 산내 골령골’. 죽음의 골짜기라 불리는 이곳에서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정치범들과 대전 지역 보도연맹원들은 억울한 떼죽음을 당해야 했다. 3차에 걸쳐 무려 7,000명 가까이 희생된 이곳은 발굴된 무덤 길이만 1km에 달한다. 전쟁 후 북한군에 가세할 수 있다는 우려로 집단 학살한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희생자 가운데 맨 처음 처형된 인물이 이관술이다. 과연 이관술은 누구였고, 왜 맨 처음 죽어야만 했을까? ▶ 전도유망한 교사에서 사회주의 항일운동가로 변신 이관술은 앞날이 탄탄했던 교사였다. 중동고를 늦은 나이에 1등으로 졸업하고 그 어렵다던 동경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 교사로 부임한 곳이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하지만 1929년 한국인 여학생이 일본인 남학생에게 희롱당하면서 시작된 광주학생운동은 서울 지역 학생들의 동맹휴학으로 이어진다. 동덕여학교 학생 250명도 학생자치와 경찰의 교내 출입 금지를 내세우며 시위에 나섰다. 이때 이관술은 일제가 두려워 이를 지켜보기만 하는 교사와 지식인의 모습에 실망하면서 본격적인 항일운동에 나선다. 이관술은 교내에 독서회를 조직하여 지도하게 된다. 이를 통해 이효정, 박진홍, 손응교 등 걸출한 여성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게 된다. 이후 그는 반제국주의동맹에 가입해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와 조선인 차별에 반대하며 본격적인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의 길을 걷게 된다. ▶ 두 번의 투옥과 7년의 도피생활에도 꺾이지 않은 항일투쟁, 해방 직후 ‘지도자 여론조사’ 5위 이관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노동자 권리 개선을 통한 국권의 회복이었다. 일제강점기 시기 조선에서 대다수를 차지했던 노동자층의 삶은 참담하기만 했다. 임금은 일본인의 절반에 불과했고 차별이 만연했다.